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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율곡 이이(李珥)와 퇴계 이황(feat. 기대승 사단칠정)

by 행복한율남매 2023. 12. 30.

 

율곡 이이

율곡 이이(1536~1584)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정치가로서 많은 저서와 업적을 남겼다.  본관이 덕수이고 호는 율곡이며 시호가 문성이다. 아버지 이원수와 어머니 평산 신 씨(신사임당)의 7남매 중 3남으로 1536년 12월 26일 강원도 강릉 외가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신사임당은 경사에 통하고 시문, 서화에 뛰어났으며 율곡의 성장기 초기 교육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이는 8, 9세에 신동으로 소문이 났으며, 13세에는 진사 초시에 합격을 하고, 아홉 번 각종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아홉 번 장원을 한 뒤 29세에 관직을 제수받았다.

 

퇴계 이황과의 만남

22세 때 성주 목사 노경린의 딸과 결혼을 하고, 경상북도 성주에 계신 장인을 찾아뵌 뒤 1558년 23세 때 외가인 강릉으로 가는 도중 안동 도산에 들러 퇴계 선생을 찾아뵙고 성리학에 대한 강학과 토론을 하였다. 이 자리에서 율곡은 35세나 위인 퇴계 선생을 스승의 예로 대했으며 이황은 이이를 높이 평가했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 존중하고 아끼며 학문적으로 보완하는 관계가 되었다. 

 

율곡은 수신의 덕목으로 성을 중요시하여 항상 성심, 즉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했다. 또 학자로서 학문 연구, 정치가로서 사회 개혁, 그리고 스승으로서 제자 양성에 일생을 바친 큰 인물이었다. 율곡은 1682년 문묘에 배향되었으데, 배향된 서원으로는 파주의 자운서원, 강릉의 송담서원, 풍덕의 귀암서원, 서흥의 화곡서원 등 전국 20여 개 서원에 모셔져 있다. 

 

 

율곡 이이의 인물됨

 

선조 때 시작된 붕당정치에서 이조전랑직, 척신정치 청산을 두고 동인과 서인으로 크게 나뉘었다.

동인의 대표적인 문인 퇴계 이황과

서인의 대표적인 문인 율곡 이이는 

35세라는 나이차이만큼이나 정치적인 입장도 크게 달랐던 모양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를 높이 평가하며, 존중하면서 유학자로서 학문적인 보완을 이루는 관계였다는 점에서 크게 배운 점이 많은 것 같다. 

 

또한 퇴계 이황은 기대승과의 4단 7정 논쟁을 벌인 것으로도 유명한데, 훗날 본인이 나이가 많아 퇴직하려고 하자 당시 임금이었던 선조가 이를 극구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퇴계 이황이 물려 날 뜻을 굽히지 않자, 선조는 그러면 훌륭한 인물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주저 없이 기대승을 추천했다고 한다. 자신과 학문적인 의견차로 수많은 논쟁을 벌였던 인물을 자신을 대신할 훌륭한 인물로 추천한 것이다. 

 

율곡 이이나 기대승과의 이야기 속에서 퇴계 이황의 인물됨이 어떠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역시 큰 인물들은 다르구나 싶다. 

 

그리고 2023년. 

이 이야기 속 인물들과 같은 사람이 단 한 명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 슬프기도 한다. 

 

 


 

율곡 이이의 독서관

새벽에 일어나면 아침나절 할 일을 생각하고, 아침밥을 먹고 나면 낮 동안 할 일을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 때면 내일 할 일을 생각한다.  아무 일이 없으면 마음을 내려놓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생각을 하여 일 처리에 마땅한 방도를 얻어야 할 것이다. 그런 뒤에 독서를 한다. 독서란 옳고 그름을 분변(分辨)하여 일을 행하는 데 실천하는 것이다. 만약 일을 살피지 않고 오뚝 앉아 독서만 한다면 무용한 학문이 된다.